이것은 1516년 예안현 관아에 입안된 1478년 김만균(金萬鈞)과 이수형처(李秀亨妻, 도촌 수형 부인) 등 9남매 화의문기, 손계영 교수가 인용한 화의문기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도촌 수형의 직책을 상장(上將), 상장군(上將軍), 상호군의 예전 고려시대 칭호인 상장이라 적고 있습니다. 사마방목에 어모장군 부사직은 뭐고 호군은 뭘까 했는데, 세조가 도촌 이수형을 회유할 당기 식물하고 전답만 주고 부른게 아니라 이런 직책들도 수여했던 것 같습니다. 이 직책을 받았기 때문에 공식 문서에 상장, 상호군이라는 직책을 쓰지 않았을까, 나중에 비석을 세울때 어모장군 충좌위부사직이라는 이름으로 비석을 세운것도 세조가 준 직책이기에 세운 것이고, 사마방목에서 13세 홍천공 대근이 생원시에 응시할 때, 아버지 신분을 어모장군 행충좌위 부사직이라 적은 것도 이게 세조가 준 직책이기 때문에 시험 응시 시 쓴 것 같습니다.
이석
그밖에도 11세 경창의 관직이 주부나 직장이 아닌 별좌로 된 것이 특이한데, 아마도 초기 직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창의 최종관직은 봉렬대부 군자감주부인데, 처가인 순흥안씨 참찬공 안구의 자녀 기록에는 직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휘 경창이 참찬공 안구의 따님을 배위로 맞이할 때, 처음 벼슬은 직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별좌 등을 거쳐 봉렬대부 군자감주부가 최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